[우리가 살아온 자리] 고요한 왕의 잠과 뜨거운 청춘의 숨소리 한 장 태릉! <태릉>

안녕하세요,

우리가 살아온 자리. 오늘은 서울의 동북쪽 끝자락, 거대한 소나무 숲이 시간을 겹겹이 품고 있는 곳, 태릉의 웃음 한 장과 눈물 한 장을 배달합니다.

이곳은 왕비의 고요한 잠과 국가대표의 뜨거운 땀, 그리고 우리들의 푸르던 학창 시절이 교차하는 문입니다.

😄 재미있는 일화 한 장

1) 소나무 숲에 울려 퍼진 “서시” 고등학교 시절, 태릉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우리들에게 거대한 무대였습니다.

동아리 장기 자랑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들 앞에 서서 부르던 신성우의 ‘서시’. “해는 저물어 밤은 찾아오는데…”로 시작하는 그 노래가 솔바람 소리와 어우러질 때,

우리는 마치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죠. 숲은 우리들의 서툰 노래를 묵묵히 들어주며 청춘의 가장 빛나는 페이지를 기록해 주었습니다.

2) ‘문정왕후’의 기를 살려준 소나무 숲 태릉의 주인공인 문정왕후는 조선 역사상 손꼽히는 여걸이었습니다.

왕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던 그녀의 묘답게, 태릉의 소나무들은 유독 곧고 기세가 당당합니다. 사람들은 이곳 소나무들이 왕후의 기운을 닮아 겨울에도 기죽지 않고 푸르다고 믿었죠.

지금도 태릉을 걷다 보면 “나무도 주인을 닮아 저렇게 꼿꼿한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3)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랐던’ 식당가 국가대표 선수촌이 있던 시절, 태릉 주변 식당들은 서울에서 가장 건장한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한 끼에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치우는 선수들 덕분에 이 동네 식당가엔 ‘무한 리필’ 문화가 일찍이 자리 잡았죠.

“선수촌 금메달은 태릉 식당 이모님들의 손맛에서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만큼, 이곳은 대한민국 에너지의 보고였습니다.

😢 슬픈 역사 한 장

1) 죽어서도 닿지 못한 왕비의 외로움 태릉은 문정왕후의 단독 능입니다. 생전에 그토록 원했던 것은 죽어서 중종 옆에 묻히는 것이었지만, 장마철 침수 문제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곳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화려했던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서글픔일까요. 웅장한 능침을 보고 있으면, 죽어서도 끝내 닿지 못한 왕비의 고독한 눈물이 소나무 숲에 비처럼 내리는 듯합니다.

2) 보존이라는 이름 아래 멈춰버린 동네 태릉 주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수십 년간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서울의 다른 동네들이 빌딩 숲으로 변하며 앞으로 나갈 때, 태릉 지역은 70~80년대의 낡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섬처럼 남겨져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향수 어린 풍경일지 모르나,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발전에서 소외된 채 낡아가는 담벽을 지켜보며 세월을 견뎌야 했던 인고의 기록입니다.

✍️ 우리가 살아온 자리

태릉은 죽은 자의 평온한 안식과 산 자의 치열한 노력이, 그리고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이 매일 아침 교차하던 곳이었습니다.

문정왕후가 잠든 고요한 능침의 무게 교복을 입고 소나무 숲에서 부르던 ‘서시’의 선율 금메달을 향해 새벽 공기를 가르던 선수들의 숨결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숲을 지켜온 주민들의 하루

도시는 변해도 사람이 남긴 추억의 농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고요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갑니다. 어쩌면 태릉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왕의 잠을 지키기도 했지만, 소나무 숲에서 노래하던 너희의 푸른 청춘을 기억하며 더 푸르게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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