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to Make Money
🎬 보너스 페이지 | 박문국에 이런 하루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신문 나온대!” 소문은 이미 특급 속보
1883년 1월 말,
한양의 어느 골목.
“야, 들었어?
종이에다 나라 소식을 찍어낸다더라!”
신문이 아직 나오기도 전인데,신문에 대한 소문이 먼저 퍼졌습니다.
아이들은 무슨 그림책이 나오는 줄 알았고,어른들은 “설마 글을 다 찍어낸다고?” 하며 고개를 갸웃했겠죠.
🖨️ 인쇄기 앞에서 벌어진 첫 문화 충격
박문국에 처음 활판 인쇄기가 들어왔을 때,기계를 본 선비들 반응은 아마 이랬을 겁니다.
- “붓도 없이 글이 나온다고?”
- “이건 글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찍어내는 거잖아?”
기계가 ‘딱—딱—’ 소리를 내며 종이를 밀어내자,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봤을 겁니다.
“글자가… 똑같이 생겼네?”
“이걸 백 장도 만들 수 있다고?”
👉 정보가 복사되는 순간,조선 사람들은 처음 경험했을 겁니다.
📦 “이거… 누가 먼저 보나?”
신문이 배포되면 생길 가장 현실적인 문제.
누가 먼저 보느냐.
- 관청에서는 “돌려 봐라”
- 서당에서는 “아이들 손 닿지 마라”
- 주막에서는 “읽어주는 사람 생김”
글을 모르는 사람도 걱정은 없었습니다.
**신문은 읽히는 물건이 아니라 ‘읽어주는 물건’**이었거든요.
한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이 들었고,
열 사람이 들으면 백 사람이 알았습니다.
👉 조선판 라이브 뉴스 방송이죠.
😏 선비들 몰래 읽은 ‘세계 이야기’
한성순보에는
조선 안 소식뿐 아니라 외국 이야기도 실렸습니다.
- 서양의 기차
- 외국의 군대
- 새로운 기계와 제도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던 선비들도 속으로는 분명 이랬을 겁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구나.”
신문 한 장이 사람들의 시야를 한양 밖으로 밀어냈던 순간이었습니다.
📮 다시, 오늘의 페이지를 덮으며
143년 전 오늘, 박문국 설치 결정은 단순히 신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이런 의미였을 겁니다.
- 더 이상 소문에만 기대지 않겠다는 선언
- 세상을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는 선택
- 글과 정보가 일부의 것이 아니게 되는 시작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성순보**가 있었고,이를 허락한 이는 **고종**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