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죽은 자의 무덤 위에 지은 ‘살아야 했던’ 집들

아미동 근현대사와 삶의 흔적을 담은 역사 공간으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하고도 가슴 아픈 마을이 있습니다. 집의 주춧돌이 묘비이고, 계단이 상석이며, 담장이 무덤의 석축인 곳. 바로 아미동 비석마을입니다. 오늘은 죽은 자의 온기라도 빌려야 했던 피란민들의 처절한 생존 기록을 배달해 드립니다.


무덤 위의 하룻밤: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피란 수도 부산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이미 평지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갓 도착한 피란민들은 산 위로, 더 위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멈춰 선 곳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던 아미동 산기슭이었습니다.

연고도 없는 낯선 땅, 비바람을 피할 천막 하나 칠 곳 없던 사람들에게 일본인들의 무덤은 역설적이게도 유일한 ‘평평한 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덤의 상석을 옮겨 구들장을 놓았고, 묘비를 쌓아 벽을 만들었습니다. 귀신이 나오지 않느냐는 물음에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 죽어나가는 판에, 귀신이 무엇이 무서우랴. 배고프고 추운 게 가장 무서운 법이지.” 그렇게 아미동은 죽은 자의 안식처 위에 산 자의 터전이 겹쳐진 기묘한 공존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 비석이 계단이 되고, 상석이 식탁이 된 풍경

비석마을을 걷다 보면 발밑을 조심해야 합니다. 무심코 딛는 계단에 일본어로 이름이 새겨져 있거나, 축대 사이로 ‘소화(昭和)’, ‘대정(大正)’ 같은 일본 연호가 선명한 돌들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 생활의 도구가 된 석물: 피란민들에게 묘비는 단단하고 좋은 건축 자재였습니다. 무덤 주위의 석축은 집의 담장이 되었고, 널찍한 상석은 빨래판이나 아이들의 식탁이 되었습니다.
  • 공존의 흔적: 지금도 아미동의 노후된 집들을 보수하다 보면 방바닥 아래에서 유골함이 나오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그 유골을 정중히 거두어 인근 절에 모셔주고, 다시 그 자리에서 삶을 이어갑니다. 이곳에서 삶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겹의 시멘트 벽을 사이에 둔 이웃이었습니다.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야 했다”

비석마을 사람들은 일본인 무덤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것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비록 적국(敵國)이었던 일본인들의 무덤이었을지언정, 죽은 이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미안함에 매년 명절이면 이름 모를 영혼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주기도 했습니다.

이곳의 기록은 단순히 ‘가난’의 기록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 부모 세대의 처절한 생명력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남의 모란시장이 황무지를 개간한 투쟁이었다면, 아미동 비석마을은 죽음의 그림자를 딛고 일어선 생존의 승리였습니다.

[표] 아미동 비석마을의 공간적 특징과 의미

구분주요 특징기록의 의미
기초석 (Foundation)일본인 묘비, 상석 활용자재조차 없던 피란 시절의 절박함
골목 계단묘비를 뒤집어 만든 계단삶의 무게를 견뎌온 억척스러운 생명력
주거 구조무덤의 평지를 이용한 판잣집죽음의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치환
현재의 모습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한국 전쟁이 남긴 세계적 주거 문화 유산

✍️ 우리가 살아온 자리: 좁은 골목에 흐르는 따스한 온기

오늘날 아미동은 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찾아오지만, 그 좁은 골목길을 채우는 것은 여전히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입니다. 빨래가 널려 있는 담장 밑으로 묘비의 모서리가 슬쩍 보일 때, 우리는 이 공간이 가진 ‘시간의 무게’를 체감합니다.

충무로가 영화의 낭만을 인쇄했고, 성남 모란시장이 정착민의 배고픔을 채웠다면, 아미동 비석마을은 ‘우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슬픔 위에 서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묘비 계단을 밟고 매일 산을 오르내렸을 어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 오늘의 페이지를 덮으며: “당신의 발밑에는 무엇이 있나요?”

아미동 비석마을의 높은 곳에서 부산항을 내려다봅니다. 화려한 야경을 뽐내는 부산항의 불빛 아래, 아미동의 낡은 집들은 낮은 포복으로 엎드려 있습니다.

  • 기록의 반전: 무덤이라는 가장 차가운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아이들을 키워낸 가장 따뜻한 방방이 되었습니다.
  • 공존의 가치: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섞여버린 이 마을은 우리에게 ‘살아있음’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행운인지 말해줍니다.
  • 오늘의 시선: 우리는 깨끗한 대리석 바닥보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묘비 위로 덧칠해진 투박한 시멘트 바닥에 더 큰 경의를 표합니다. 그것이 진짜 우리 민족이 살아온 자리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죽음 위에 꽃을 피운 아미동 사람들처럼, 당신이 오늘 겪고 있는 막막함도 언젠가는 단단한 삶의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의 삶이 딛고 서 있는 그 자리에 깃든 가장 숭고한 기록들을 배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로 보네세요.

부산 아미동
부산광역시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아미동 비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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