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의 세월도 녹이지 못한 북녘의 겨울 바람
1950년 12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자유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흥남철수작전의 실향민들에게는 거제도는 제2의 고향 이며, 동시에 이곳은 지독한 그리움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할 것 입니다. 그 곳에 서려 있는 이별의 눈물, 그리고 명절이면 더욱 짙어지는 그들의 슬픈 기록 이야기 입니다.
1. 1950년 12월, 인류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 ‘흥남철수’
흥남철수작전 :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포위된 국군과 유엔군 10만 명, 자유를 갈망하며 따라나선
피란(避亂)민 10만 명을 배에 태워 남쪽으로 탈출시킨 거대한 사건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크리스마스의 기적
당시 화물선이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는 무기와 짐을 모두 버리고 1만 4천 명의 피란민을 태웠습니다.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한 이 사건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가족이 생이별해야 했던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생과 사를 가른 선택의 순간
배에 타기 위해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그날의 흥남부두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살아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이 평생의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거제도에 도착한 이들은 낯선 땅,
낯선 기후 속에서 오직 ‘다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2. 거제도, 실향민들의 눈물이 서린 제2의 고향
거제도는 당시 1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을 품어준 따뜻한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실향민들에게 거제의 바다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막아선 거대한 장벽이기도 했습니다.
거제 포로수용소와 장승포항의 의미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장승포항은 당시의 처참했던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장승포항에 내린 피란민들은 거제 시민들의 도움으로 굴 껍데기를 까거나 짐을 나르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들이 정착하며 만든 삶의 터전은 오늘날 거제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명절이면 더욱 시린 가슴: 설날에 고향을 가지 못하는 이들
설날 아침, 떡국 한 그릇에 담긴 의미는 실향민들에게 유독 남다릅니다.
가족과 함께 북적이며 먹어야 할 떡국이, 누군가에게는 홀로 삼켜야 하는 그리움의 맛이기 때문입니다.
망향제: 북쪽 하늘을 향한 마지막 인사
거제도와 파주 임진각 등지에서는 매년 명절마다 망향제가 열립니다. 정성껏 차린 제상을 앞에 두고 북녘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리는 노인들의 굽은 등 위로 쌓이는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슬픔입니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건네지 못해 목이 메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가 반드시 기록해야 할 아픈 유산입니다.
왜 우리는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소외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 역사의 산증인: 흥남철수를 겪은 1세대 실향민들이 생존해 계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하는 것은 민족의 숙제입니다.
- 평화의 소중함: 전쟁이 남긴 상처를 되새기며, 다시는 이 땅에 가족이 헤어지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아야 함을 교육해야 합니다.
- 공감의 확장: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은 성숙한 사회의 척도입니다. 실향민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합니다.
당신의 설날은 평안하신가요?
거제도의 찬 바닷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불어옵니다.
1950년의 겨울도, 올 설날도 그 바람은 누군가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이번 설 명절, 따뜻한 방 안에서 가족과 함께 계신다면 잠시만 시간을 내어 거제도 너머 북쪽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우리가 살아온 자리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낙원’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제 장승포항의 고동 소리가 더 이상 슬픈 비명이 아닌, 화해와 재회의 기쁨으로 울려 퍼질 날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흥남부두 철수작전
